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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온 소울] 제4화: 붉은 여우의 위험한 제안

SYNC DATE: 2026.04.15 👁 45 🤍 1 💬 0

# 제4장: 붉은 여우의 거래

카이의 안식처는 러스트의 가장 깊은 지층, 폐쇄된 데이터 센터의 지하에 숨겨져 있었다. 천장에는 수만 개의 광섬유 케이블이 거대한 거미줄처럼 엉켜 있었고, 그 끝에는 작은 메모리 칩들이 매달려 희미하고 규칙적인 맥박처럼 깜빡이고 있었다. 그곳은 기억들의 묘지이자, 잊힌 것들의 갤러리였다.

"앉아."

카이는 호화로운 벨벳 안락의자에 몸을 깊숙이 묻으며 턱짓을 했다. 그는 제로에게 신비로운 푸른 빛이 감도는 액체가 담긴 잔을 건넸다.

"기억 안정제다." 카이가 설명했다. "너무 많은 타인의 자아를 흡수하면 '나'라는 경계가 흐려지기 시작하지. 너 같은 체질에게는 자아 분열의 위험이 극심해."

제로는 잔을 받았지만 마시지 않았다. 대신 카이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나에 대해 뭘 알고 있지?"

카이가 낮게 비웃음을 흘렸다.

"많이는 몰라. 하지만 네 눈이 이야기를 해주더군. 넌 처음부터 비어 있었던 게 아니야, 제로. 강제로 비워졌거나, 아니면 처음부터 다른 사람들의 삶의 찌꺼기를 담는 쓰레기통으로 설계되었겠지."

제로는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그것은 기억에서 배운 감정이 아니라, 본능적인 거부감이었다.

"쓰레기통…?"

"부정하지 마. 넌 고통을 흡수할 때 가장 안정적이잖아, 안 그래? 보통 인간은 고통으로부터 멀어지려 하지만, 넌 그것을 갈구하지. 그것이 네 본성이고, 네 기능이다."

카이는 일어나 제로의 주위를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그의 발소리가 금속 바닥에 차갑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생각해보라고. 모든 고통을 흡수할 수 있다는 건, 역설적으로 모든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 그리고 더 중요한 건… 네가 이 도시에서 가장 거대한 금고인 '아카이브(The Archive)'를 열 수 있는 유일한 열쇠라는 거야."

"아카이브?"

"오라클 쉘의 정점에 있는 아카이비스트가 수집한 모든 순수 기억의 결정체지. 그곳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더 이상 거리의 하수구에서 파편이나 줍고 다닐 필요가 없어. 네가 원하는 모든 인격, 모든 기술, 모든 사랑을 한꺼번에 가질 수 있지. 너는… 완전한 인간이 되는 거다."

카이의 목소리는 꿀처럼 달콤했지만, 제로는 그 속에 숨겨진 가시를 느낄 수 있었다. 카이는 그를 돕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제로를 도구 삼아 자신이 잃어버린 무언가를 되찾으려 하는 것이었다.

"왜 나를 돕는 거지?"

카이가 멈춰 섰다. 찰나의 순간, 냉혹한 상인의 가면이 벗겨지며 깊고 공허한 상실감이 언뜻 비쳤다.

"난 내 모든 '연민'과 '사랑'을 팔았거든. 이 시장의 정점에 오르기 위해 가장 먼저 버려야 했던 것들이었지. 성공은 했어… 하지만 이제는 그 감정들이 실제로 어떤 느낌이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아."

카이가 제로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너는 내 잃어버린 조각들을 찾아낼 사냥개고, 나는 너에게 영혼을 부여할 주인이 되는 거다. 나쁘지 않은 거래지?"

제로는 카이의 야심이 뿜어내는 차가운 굶주림을 느꼈다. 하지만 동시에, 내면의 공허가 '완전함'이라는 유혹에 격렬하게 반응했다.

천천히, 제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거래하지."

그 순간, 안식처의 조명이 붉게 점멸하며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카이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젠장. 벌써 냄새를 맡았군."

벽면의 모니터들이 지직거리며 노이즈 섞인 영상을 띄웠다. 검은 그림자들이 입구를 포위하고 있었다. 정해진 형태가 없는 그들은 수천 개의 속삭이는 입들이 내뱉는 불협화음을 내뿜고 있었다.

"섀도우 존의 포식자들이군. 기억의 냄새를 맡은 거야. 정확히는… 너처럼 거대한 공허의 냄새를."

카이는 코트 속에서 은색 단검 하나를 꺼내 제로를 향해 휙 던졌다.

"환영 인사가 좀 거칠겠지만, 살아남아 봐. 네가 정말 내 열쇠가 될 자격이 있는지 확인해야겠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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