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온 소울] 제5화: 그림자 구역과 소멸의 감각
# 제5장: 섀도우 존
안식처의 외벽이 굉음과 함께 무너져 내렸다. 그 안으로 들이닥친 것들은 생명체가 아니라, 형상화된 '글리치'들이었다. 삭제된 증오, 버려진 슬픔, 그리고 사람들이 잊기를 기도했던 죄책감들이 뭉쳐 만들어진 데이터 괴물들.
섀도우 존의 포식자들이었다.
그들은 물리적 형태가 없었기에 심리적인 공격을 가했다. 제로를 포위한 그들은 집단적인 비명을 질렀고, 수만 개의 파편화된 기억들을 그의 정신 속으로 강제로 주입했다.
[…살려줘… 미안해… 왜 나만… 다 죽여버리고 싶어…]
그것은 정제되지 않은 생존의 날것 그대로의 고통이었다. 평범한 인간이었다면 이 정보의 폭풍 속에 즉각적인 정신 붕괴를 일으켜 껍데기만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제로는 달랐다.
고통에 비명을 지르면서도, 그는 그 어둠을 자신 안으로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우우웅—*
제로를 중심으로 거대한 진공 상태가 형성되었다. 포식자들이 뿜어내는 오물 같은 기억들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그의 피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제로의 색 없던 눈이 일시적으로 짙은 보라색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그 대가는 처참했다. 기억을 흡수하는 것은 단순히 데이터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이 가진 '무게'를 견뎌내는 일이었다.
'너무… 무거워…'
시야가 흐려지고 주변 세상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제로는 자신이 더 이상 카이의 안식처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트라우마의 거대한 힘에 이끌려 섀도우 존의 심연으로 끌려 내려온 것이었다.
그곳은 기억 쓰레기들의 황무지였다. 재색 데이터 구름이 낮게 깔려 있었고, 바닥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억의 잔해들이 뒤섞인 끈적한 늪이었다.
그곳에서 제로는 '허스크'들을 보았다. 한때는 인간이었으나 정체성을 너무 많이 잃어버려 더 이상 형태를 유지하지 못하는 존재들. 그들은 멍한 상태로 서서 자신의 이름조차 잊은 채, 하늘에서 우연히 떨어지는 기억 조각 하나를 기다리며 입을 벌리고 있었다.
'기억 부식(Memory Decay).'
이곳의 공기는 치명적이었다. 가만히 서 있는 것만으로도 존재를 정의하는 정보들이 알갱이 하나하나 깎여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공포가 제로를 덮쳤다. 이곳의 모든 것을 흡수한다면, 자신 또한 결국 또 다른 허스크가 되어 자신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괴물이 될지도 모른다는 깨달음이 왔다.
그때, 늪 속에서 거대한 형체가 솟아올랐다. 수백 명의 기억이 융합되어 만들어진, 거대한 눈의 형상을 한 괴물이었다. 괴물이 눈을 뜨는 순간, 단 한 문장이 제로의 정신에 낙인처럼 새겨졌다.
[ 너는… 우리와 같다. ]
그 말은 심장을 꿰뚫었다. 자신이 특별하다고 믿고 싶었지만, 섀도우 존의 진실은 잔인했다. 그는 선택받은 열쇠가 아니었다. 그저 조금 더 큰 쓰레기통이었을 뿐이다.
절대적인 절망의 순간, 손에 쥔 은색 단검이 한 줄기 빛을 반사했다.
"정신 차려, 이 멍청아!"
카이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머릿속에 울렸다.
"그놈들이 널 먹게 놔두면 너도 그냥 데이터 쓰레기가 되는 거야. 흡수하지 마! 밀어내! 네 안의 공허를 무기로 사용하라고!"
제로는 이를 악물었다. 자신을 채우려는 집착을 버리고, 대신 심장 속에 자리 잡은 거대한 '무(Nothingness)'를 개방했다. 그는 모든 것을 끌어당기는 블랙홀이기를 그만두고, 닿는 모든 것을 지워버리는 '화이트 노이즈(White Noise)'가 되었다.
강렬한 빛의 충격파가 섀도우 존을 휩쓸었다.
제로가 의식을 되찾았을 때, 그는 안식처의 폐허 속에 누워 있었다. 하늘에서는 계속해서 재색 가루가 내리고 있었고, 카이가 깊은 실망감과 호기심이 섞인 눈으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죽을 뻔했군. 하지만 덕분에 확인했다."
카이가 얇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넌 단순한 저장 장치가 아니야. 기억을 '소멸'시킬 수 있군. 이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능력이군."
제로는 천천히 일어섰다. 그의 눈은 다시 색 없는 상태로 돌아왔지만, 그 깊이는 더욱 깊어져 있었다. 그는 이제 자신이 결코 인간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 감옥 같은 도시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유일한 방법을 깨달았다.
그것은 모든 기억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모든 기억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