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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온 소울] 제1화: 색깔 없는 소년과 기억의 시장

SYNC DATE: 2026.04.15 👁 59 🤍 0 💬 0

# 제1장: 회색의 공허

오라클 쉘(Oracle Shell)이라는 도시는 숨을 쉬지 않았다. 그것은 연산했다.

그곳은 물리적 공간이 상수가 아닌 변수로 작용하는 거대한 구체형 메갈로폴리스였다. 제니스(The Zenith)의 변덕에 따라 실시간으로 재구성되는 도시. 상층의 첨탑에 거주하는 이들에게 이곳은 수정처럼 빛나는 빛과 완벽한 통합이 이루어진 낙원이었지만, 심연으로 내던져진 이들에게 도시는 녹슨 강철과 누출되는 데이터가 뒤엉킨 질식할 것 같은 미로였다.

제로는 그 심연, '더 러스트(The Rust)'에 살고 있었다.

그는 무너져가는 마천루의 끝자락에 앉아, 네온 빛 스모그가 소용돌이치는 허공 위로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강렬한 색채의 세상 속에서 제로는 한 점의 회색 얼룩과 같았다. 그의 코트는 재색이었고, 피부는 죽은 도시의 겨울 아침 같은 빛깔이었으며, 그의 눈은… 그의 눈이야말로 가장 이질적인 부분이었다. 그것은 색이 없었다. 흰색도, 검은색도 아닌, 모든 것을 투영하지만 아무것도 담지 않는 투명한 공허였다.

그는 '블랭크(Blank)'였다. 기계 속의 유령.

오라클 쉘에서 유일하게 가치 있는 통화는 기억이었다. 사람들은 크레딧이나 금을 거래하지 않았다. 그들은 '순간'을 거래했다. 첫 키스의 떨림,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내리는 비의 냄새, 부모를 잃은 고통스러운 슬픔—이 모든 것은 추출되어 메모리 칩으로 디지털화되었고, 가장 높은 금액을 제시한 구매자에게 팔려 나갔다. 제니스의 부유층은 스스로는 더 이상 느낄 수 없게 된 감정들을 경험하기 위해 이 기억들을 샀고, 러스트의 절박한 이들은 단 하루치의 합성 산소를 얻기 위해 가장 소중한 추억들을 팔아치웠다.

제로에게는 팔 수 있는 기억이 없었다. 어린 시절조차 없었다. 그는 그저 그곳에 존재했다.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하나의 빈 그릇으로서.

하지만 제로에게는 재능, 혹은 저주가 있었다. 그는 버려진 것들을 빨아들이는 스펀지였다.

러스트의 붐비는 슬럼가를 걸을 때면, 그는 그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메모리 리크(Memory Leaks)'. 도시 거주자들이 버리거나 삭제한 데이터의 파편과 감정의 잔해들이 무지갯빛 눈송이처럼 공중을 떠다녔다. 다른 이들에게 그것은 단순한 노이즈나 시각적 잡음에 불과했지만, 제로에게 그것들은 속삭임이었다.

그는 손을 뻗어 떠다니는 연한 푸른색 빛의 파편 하나를 낚아챘다.

*지지직—*

파편이 피부에 닿는 순간, 낯선 전기 신호가 척추를 타고 강렬하게 솟구쳤다.

[데이터 입력: 자장가의 파편. 어머니의 온기. 안전하다는 느낌. 오래된 종이와 라벤더 향기.]

찰나의 순간, 제로는 그것을 느꼈다. 자신의 것이 아닌 온기, 텅 빈 가슴에 칼날처럼 박히는 다정함. 그의 회색 세계가 갑작스럽고 가슴 아픈 푸른색으로 타올랐다. 누군가의 얼굴이 보일 것 같았고, 자신의 것이 아닌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러나 그 감정은 찾아온 순간만큼이나 빠르게 사라졌다. 기억은 그의 내부의 공허에 흡수되어 소화되었고, 남은 것은 이전보다 더 깊고 아린 공허뿐이었다.

그는 푸른 빛이 머물렀던 허공을 향해 손을 움켜쥐었다.

"비었어." 그가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억양 없이 평평했다. 마치 잘못된 속도로 재생되는 녹음 파일 같았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왜 존재하는지 알지 못했다. 다만 그가 아는 것은 내면의 굶주림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사실뿐이었다. 더 많이 흡수할수록, 그는 자신의 영혼에 뚫린 구멍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깨달았다.

그는 모든 것을 담을 수 있게 설계되었으나, 정작 아무것도 담지 못한 그릇이었다.

제로가 난간에서 내려와 걸음을 옮길 때, 그는 근처 환기구 그림자 속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시선을 눈치채지 못했다. 포식자 같은 짙은 진홍색 코트를 입은 사내. 그의 눈은 계산적이고 날카로운 여우처럼 빛나고 있었다.

"찾았다." 사내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입가에 얇고 위험한 미소가 걸렸다. "완벽한 그릇. 궁극의 공허로군."

제로는 네온 빛 비를 맞으며 계속 걸어갔다. 자신이 방금 기억 시장에서 가장 가치 있는 자산이 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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